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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도탐사-제3화)이어도 실체 확인 35년...해양대국 미래의 꿈 영글다

글쓴이 : 해양소년단  (183.♡.241.118) 날짜 : 2018-08-22 (수) 17:38 조회 : 289


이어도 탐사에 성공한 후 한림항으로 무사히 귀환한 탐사팀의 단체 기념 사진. 위쪽 줄 왼쪽에서 두번째가 필자인 장순호 부대장.

 

984년 4월 8일 오후 4시쯤 회항 준비에 들어갔다. 이어도 바다에는 벌써 하얀 백파로 바람이 불기 시작하였다. 빨리 서둘러야 했다.

조금씩 멀어져 가는 ‘이어도’에는 하얀 거품이 소용돌이가 치기 시작했다.

우리가 떠난 뒤에 바다 밑 조류속도가 더욱 빠르게 움직이는 파랑여의 모습을 볼 수가 있었다.

오후 4시쯤 우리는 ‘이어도’ 탐사의 성공을 자축하면서, 소리소리 높여 외쳤다.

“후후 이어도 사나, 후후 이어도 사나····.”

뱃머리를 제주도 한라산 쪽 한림항으로 돌렸다.

회항을 시작한지 2시간이 지나고 6시쯤 그렇게 좋았던 맑은 날씨가 시커멓게 변했다.

어느새 먼 이어도에는 작은 파도가 하얀 거품을 물고 백해(白海)가 되어 소용돌이치기 시작하였다.

“수중탐사에 성공한 우리들이 돌아가는 길, 무사히 잘 갈수 있도록 가만히 보내 주십시오”하며 소원기도를 하였다.

“이어도를 본 사람은 살아가지 못한다”고 하였는데 무슨 일이 일어날 것 같은 더욱 불안한 예감이 머리를 스쳐갔다.

자꾸만 하얀 소용돌이 파도가 물거품을 내면서 ‘이어도 노래’를 불러주는 것 같고, 바다 속 깊이 하얀 석면 카펫을 만져 바라본 불길한 생각이 자꾸만 마음에 걸린다.

아니나 그럴까.

다음날인 4월 9일 새벽 엄청난 큰 파도와 폭우에 휩싸여 우리 탐사대의 ‘스쿠바호(5t)’가 난파당하는 큰 사건이 일어난 것이다.

당시 필자는 기관실에서 대원들과 함께 엉켜서 쪼그리고 눈을 감고 지루하고 불안한 생각을 다하면서 폭우에 추워서 떨고 있었다.

새벽 2시쯤. 순식간에 기관실에 먼저 물이 차기 시작했다.

‘스쿠바호’는 높은 파도와 비바람을 이기지 못하여 갑자기 배 밑창이 깨어지는 소리와 함께 기관실에 바닷물이 밀려들었다.

대원들을 급히 앞장선 ‘여진호(26t)’ 박춘길 선장에게 ‘스쿠버호’를 급히 구조해 달라는 무선 연락을 했다.

절체절명의 순간이었다.

폭풍우 속에서의 그 상황은 너무나 무서웠다.

절박한 운명의 순간들이었고 상상을 할 수 없을 정도로 바다는 잔인했다.

급히 다가온 여진호에서 로프줄을 던져 스쿠바호를 겨우 끌어당겨서 3~4m 사이 간격으로 양쪽 배를 로프줄로 연결했다.

생명줄이었던 로프에 의지하여 대원들이 침착하게 ‘스쿠바 탐사선’을 탈출하여 무사히 ‘여진호‘로 건너왔을 때 스쿠바호는 바다 밑으로 침몰했다.

그리고 ‘여진호’에서 점점 멀어져 바다 밑으로 서서히 침몰하며 사라져가는 희미한 ‘스쿠버호’를 보면서 모든 대원들은 갑자기 더 이상 말할 수 없는 감정에 휩싸였다. 운명을 함께했던 우리의 소리 없는 울음이었다.

우리들은 폭풍우가 쏟아진 그날 밤 내내 비바람 속에서 밤새 ‘여진호’ 선상 위에 서 있었고 혹독한 추위와 컴컴한 해상에는 거센 파도와 세찬 바람뿐이었다.

우리는 악착같이 살아서 돌아가야 한다는 생각만 들었을 뿐이었다.

그렇게 생환했다. 대원들 모두 잘 이겨내어 살았다는 것이 기적이라 생각했다.

당시의 재산적 피해는 엄청났다.

최웅길 대장의 소유 ‘스쿠바호 탐사선’은 물론 대형 수중카메라와 수중 탐사대원들의 고가 개인 수중장비, 카메라 등 36년 전 당시 액수로 약 5억원 이상의 재산피해를 보았다.

1984년 4윌9일 새벽 6시가 되었다.

밤새 한입에 잡아 삼킬 듯 무섭게 휘몰아쳤던 그 파도와 비바람은 언제 그랬냐는 듯, 그렇게 몸서리치도록 죽일 듯한 폭풍이 멈췄다.

바다는 다시 평온했다.

마침내 4월 9일 오후 5시쯤 멀리서 제주도 한라산이 보이고, 점차 한림항이 보이기 시작했다.

‘아, 이제 살았구나!’

무사히 한림항에 도착한 것이다. 서로 부둥켜안고 “이제 살았다” 하고 외쳤다.

지금도 1984년 4월 8일 회항 중 ‘이어도 바당의 축제’와 함께 먼 이어도에 소용돌이치는 백해(白海)의 모습을 잊을 수 없다.

9일 새벽에 거대한 파도와 폭풍우로 ‘탐사선 스쿠바호’가 난파당했던 그 삼각파도에서 미끄럼 타는 듯이 솟아오르는 무서운 파도, 넓은 바다의 파도 물결, 바당 깊이 침몰해 가는 ‘스쿠바 탐사선’ 기관실의 희미한 하얀 불빛들, 폭풍우의 파도 소리가 30여 년이 지난 지금도 귓전에 생생하다.

여진호가 무전기 고장으로 귀항 도중 통신두절로 인해 관계기관과 가족들은 폭풍우가 치는 바다를 보며 그 당시 침몰 해난사고가 난 것으로 생각했다.

“이어도를 간 사람은 다시 돌아오지 못한다”는 전설이 정말 실제인지 가족들은 눈물을 흘리며 분향소 준비를 했다고 한다.

우리는 살아 돌아온 그날 이 ‘소코트라 록’, ‘파랑도’를 제주신화와 설화에 나오는 전설의 신비의 섬 ‘이어도’라고 명명했다.

그 ‘이어도’에 우리의 ‘탐사선 스쿠바’호와 귀중한 탐사자료, 모든 장비와 목숨을 제외하고는 모든 것을 다 내려놓고 13명의 탐사자들만 무사히 목숨만 살아왔다.

지금도 당시에 탐사선 스쿠바호가 난파되었고 탐사 모선인 여진호가 그 무서운 태풍을 이겨 살아 왔다는 것은 기적이다.

당시에 누군가의 도움으로 그 순간 목숨을 건져준 것이 ‘당신 이어도’라고 생각하면서 그 넓은 해양바다 자연에 대한 도전치고는 너무나도 끔찍한 순간들이었다고 말씀 드리고 싶다.

그렇게 가족의 품으로 돌아왔다.

1984년 4월 6일~9일까지의 해양소년단 제주연맹 파랑도 탐사대가 탐사에 성공한 역사의 기록이다.

제주의 젊은이들에게 바다의 희망과 해양 개척정신 함양에 앞장서 최선을 다하신 훌륭한 영웅 고(故) 최웅길 대장의 영전에 이 기록을 바치면서 후원해준 도민께 감사드린다.

필자는 탐사 이후에 이어도 수중탐사와 폭풍우에 난파된 탐사선 ‘스쿠버’ 모습, 기적적으로 신의 도움으로 살아왔다는 생각만으로 잠을 못 이뤘다.

매일 꿈자리가 좋지 않고 이어도에 대한 트라우마로 인해 병원치료를 받았다.

다른 대원들도 많은 고통을 겪었다. 필자가 쓰는 이 글이 35년전 생사를 같이했던 해양소년단 제주연맹 탐사대원 모두에게 위안이 되고, 긍지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지금은 ‘이어도’에 대한민국의 해양과학기지가 건설되어 있다.

‘이어도’는 우리 해양주권의 상징이며 해양을 향해 나가는 대한민국 젊은이들의 표상이 되었다.

늘 나는 우리의 미래가 바로 저 바다에 있다고 생각한다. <끝>제주일보 webmaster@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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